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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마음읽기

아이와 싸우지 않는 법

by BEOM JUM MA 2022.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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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공부문제로 싸운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아이가 한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나간다고 하여 싸운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아이가 브로콜리, 양파등의 야채 빼고 편식하는 모습에 화가 난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아이가 해야할 숙제를 미뤄놓고 핸드폰 게임을 하는 것에 소리 지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이 말 고도 나와 아이와는 수없이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다.

이건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아이를 가진 수많은 어머니들의 이야기 일 것이다.
그중 가장 많이 싸우는 부분은 학업, 공부, 시험성적일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냥 잘하라는 게 아니라, 100점 받으라는게 아니라, 너무 떨어지지 않게 다른 애들 하는 만큼만 해"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참으로 모순적인 이야기였다.
"다른 애들 하는 만큼만 해"라는 말은 결국 다른 애들처럼 "학교 갔다가 학원 갔다가 공부방 갔다가 독서논술에 집에 오면 밥 먹고 숙제하고 자기 전에 책 한 권 읽고 자"라는 이야기와 뭐가 다른가? 나도 보통의 엄마들처럼 열심히 하지 않는 아이와 공부 문제로 소리지기도, 달래보기도, 울면서 이야기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남은 건 아이와의 거리감, 아이와 사라진 대화, 서먹하고 어색하며 불편해진 관계, 아이의 늘어난 짜증, 그런 짜증을 보면서 나도 짜증, 결국 아이 잘되라고 했던 이야기는 아이에게 감정 섞인 말들로 상처를 주고 공부의 발전보다는 서로의 관계만 나빠지는 상황이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대체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은가?
공부를 강요하고, 학원에 다니게 되면 모두 공부를 잘하게 되는가?
공부를 잘하고 반에서 1등을 하게 되면 훌륭한 아이로 클 수 있는가?
훌륭한 아이로 크게 되면 아이가 행복한가?
나는 아이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기로 한다.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우리는 말한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아이를 보면 욕심이 생기게 된다. 한글을 다른 애들보다 빨리 읽기를 바라고, 원어민과 자연스러운 대화가 진행되면 좋겠으며,
매일 반복적으로 연산을 훈련해서 수학도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다음은 동네 엄마들과 이야기를 하며 나의 이런 교육이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누구나 시작하는 교육을 시킨다고 합리화하게 된다.

아이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해야 할 것들은 많아지고, 학업의 난이도는 점점 올라가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힘들어하는 아이를 마주치게 될 것이며, 나는 고민하게 된다.
이제껏 힘들게 시킨 교육을 아이가 힘들다고 해서 쉽사리 놓을 수 있을까?
힘들다고 받아주면 계속 요령을 피우지 않을까?
그냥 이대로 모른 척하는 게 좋겠지?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만다.


점점 아이는 짜증은 늘어가고, 화도 자주 내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 공부시간이 점점 증가하면서 취침하는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한다.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정확도도 함께 떨어지게 되었다. 그렇다 몸뚱이만 책상 앞에 앉아있을 뿐 영혼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참으로 비효율적인 공부법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제야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 나의 모바일 선생님인 유튜브로 아이와 대화하는 법, 아이와 싸우지 않는 법등의 원초적인 질문을 시작으로 연결된 알고리즘을 따라 육아 관련 영상과 오은영 선생님 등 전문가들의 강의들을 시간이 날 때마다 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마음이다.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힘듦을 알아주고,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너라는 것을 알게 해 주고,아이의 마음을 누구보다 먼저 헤아려 주며, 나의 생각은 감정 없이 표현하고,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며 건강하게 자라는 것에 감사하기로, 또한 아이의 작은 노력과 과정에 박수를 보내주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튼튼한 마음을 가지고 정신이 건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 라는 나만의 아이 키우는 기준이 생겼다.
나는 성격이 매우 많이 급한 편이다. 마치 어릴 때 아버지가 외식을 나가자는 말이 무섭게 준비 안된 가족들보다 먼저 문밖에 나가 있는 것만큼 급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렇지만 아이를 대할 때만큼은 천천히 생각하고 조급하게 결과를 재촉하지 않으려는 노력 또한 함께 하고 있다.

며칠 전 점심을 먹고 한 커피숍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6~7살 정도 되는 아이가 엄마 옆에서 영어 숙제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익숙한 듯 샌드위치를 먹는 둥 마는 둥, 10페이지는 족히 될만한 페이지에 고사리 같은 손은 부지런히 꼬부랑글씨를 써내려 가고 있었다. 엄마는 핸드폰을 하며 중간중간 아이가 잘하고 있는지만 살펴볼 뿐 ' 빨리 해"와" 집중해"라는 말로 재촉하고 있었다.
옆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아이의 나이는 고작 6~7살 정도인데, 내가 그리고 아이의 엄마는 이나 이땐 무엇을 했을까? 꽤나 꼰대 같은 질문이긴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시대는 많이 변했고, 아이들은 우리가 살았던 시대보다 더 힘들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더 똑똑해야 하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열심히 , 더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담는 자만이 성공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하며, 뛰어놀 시간이 필요하다.
적당한 자극과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는 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지속적이고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가 장기화되었을 때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아이든, 어른이든 적당한 쉼이 필요한데, 아이들에게 그것은 놀이이다.
흔히 꼰대들은 말한다 "나 때는 말이야~ 핸드폰이 어딨어 그냥 땅 파면서 놀았어"라고 . 그때와 지금은 많이 바뀌었고 세상은 편리하게 변했지만 어릴적 나의 시절은 땅파면서 놀아도 많이 즐거웠고, 고무줄놀이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이 따뜻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시원한 바람, 따뜻한 햇볕, 동네마다 잘 갖추어진 놀이시설이 1미터마다 있는데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다.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모두 학원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수학학원 끝나면 피아노 학원, 영어학원, 논술학원 등 모든 스케줄은 요일별로 완벽히 짜여있다. 나는 배움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 또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매우 좋아한다. 단지 걱정이 되는 건 너무 앞선 선행 과목과 완벽을 추구하고자 어느 한과목도 놓치고 싶지 않은 부모의 욕심이 아이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군데 가만히 앉아 시속 150킬로미터로 달린다고 해서우리가 더 튼튼해지거나, 행복해지거나,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아무리 느리게 걸어 다니며 본다 해도

세상에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늘 더 많은 것이 있다.

빨리 간다고 해서 잘 보는 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

사람의 기쁨은 결코 어딘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존 러킨스-


정말 위대하고 감동적인 모든 것은 자유 안에서 일할 수 있는 자들에 의해 창조된다.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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